강창일 (배재대학교 교수 / 한일관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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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동안 일제강점기 당시의 식민지지배정책에 대한 연구는, 다른 분야의 연구에 비해 특히 미진했던 것이 현실이다. 그 원인으로는 종래 식민지시대에 대한 연구 자체를 터부시하였던 분위기뿐만 아니라 관계사료를 수집하여 분석하기가 용이하지 않았다는 점도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80년대 이후 젊은 연구자들에 의해 이 시대 연구가 진행되기도 했지만, 그것은 당시 독립운동이나 민족해방투쟁에 집중되어 왔다. 이는 일제의 지배정책에 대하여 연구할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는데, 물론 정치사 연구자들에 의해 이루어진 성과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역사학 분야에서의 본격적인 연구는 별로 눈에 띠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일제의 지배정책에 대한 연구는 식민지 본국인 일본의 정치사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선행되어야 하며 일본측 문서를 섭렵해야 하는 이중, 삼중의 과제를 안고 있기도 하다. 특히 사료에 관한 문제는 간단히 해결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우선 제1차 사료를 수집해야 하고 더 나아가 그 자료를 이해할 수 있는 戰前의 일본어에 대한 해독능력을 갖추어야만 한다.

조선총독은 천황에게만 책임지면서 절대군주와도 같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였다. 이러한 사실은 총독(분신으로서 정무총감)이라는 개인의 정치적 성향이나 입장이 조선 지배정책을 규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총독에 대한 정확한 분석이 필요한데 그들 총독에 관한 자료들(특히 일기나 서간류 등)은 각 개인이 소장하여 공개하지 않았기 때문에 제1차 사료에 접근하기가 더욱 어려웠다. 6, 70년대 이후 데라우치(寺內正毅) 총독, 사이토(齋藤實) 총독, 그리고 우가키(宇垣一成) 총독의 문서와 일기 등이 그 유족에 의해 일본국회도서관 헌정자료실에 기증되었다. 그러한 자료들에 힘입어 1910년대에서 30년대 전반기의 지배정책에 대한 연구가 일본의 한국사학계에서 일부 이루어질 수 있었다. 일제가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을 도발하면서 식민지 조선은 인적·물적 자원의 보급지로 정해졌고 그 지배정책은 전쟁강제동원책과 완전한 민족말살을 획책하는 '황민화정책'으로 전환되었다. 즉, 1937년 중일전쟁 이후 패전까지의 지배정책은 민족말살을 통한 전쟁강제동원기였다고 할 수 있다.

근래에 한·일간의 군 위안부 문제 등, 전쟁강제동원기에 일제가 한민족에게 자행한 범죄행위에 대한 '과거청산'의 과제가 실천적인 문제로서 제기되면서 이 시기의 지배정책에 대한 연구는 역사학계에 매우 중요한 과제로 부상되었다. 그러한 요구에 직면하여 당시의 자료를 수집하는 것에 대한 필요성은 더욱 고조되었다. 이것이 이번 {일제하 식민지배사료총서}를 발간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여기에서 전시동원기의 지배정책에 대하여 간략하게 개괄하여 보기로 하겠다.

1920년대에서 30년대까지는 일제가 민족분열을 야기시키며 조선지배의 토대를 공고히 하는 소위 '민족개량화'를 도모했던 시기라고 한다면, 전시동원기는 조선의 총체적 해체와 완전한 일본화를 목적으로 삼고 노골적인 '민족말살정책'을 전개했던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일제는 이 때 전시기(戰時期)임을 빙자하여 '창씨개명'(폐성탈명)을 단행하였다(사회적 동화). 조선민족에게 있어서 성(姓) 관념은 언어나 종교 또는 지연(地緣)보다도 더 중시되는 민족구성원으로서의 필요충분 조건이었다. 그런데 이 성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여 새롭게 일본 가족주의의 씨(氏)제도를 강요한 것은, 혈통주의에 의한 민족공동체로서의 조선을 해체하여 천황을 정점으로 하는 가부장적 국가체제 속에 최하위 말단 계급으로 조선인을 편입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폐성탈명을 단행하면서 민사령 개정, 호적 개정, 서양자(壻養子)제도 도입 등을 통하여 전통적 가족제도를 파괴하기도 하였다. 뿐만 아니라, 신사참배와 황국서사를 강제하였다(종교적 동화). 이는 천황을 신앙의 대상으로 하는 일본의 종교체계에 조선인을 세뇌시켜 포섭하기 위한 종교적 동화정책이었다. 또 조선어 사용을 금지하고 일본어를 강제하여 언어공동체로서의 조선민족을 해체시켰고 조선의 역사를 왜곡하여 편입시켜버린 일본사를 주입시켰다. 그리고 조선의 관습과 문화를 파괴, 해체하면서 일본화시켜 나갔다(문화적 동화).